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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 KIM

© WOOKIM

Painted Boxes "(2016)는 "방향성에 의해 다르게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고찰이 담긴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각 면에 화살표 기호가 그려진 총 27개의 정육면체들(30 x 30 x 30 cm)로 이루어져있다. 나는 3개월 여 동안 이 상자(들)과 함께 벨기에, 이탈리아, 프랑스 등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In Situ 방식으로 상자들의 배치를 바꿔가며 설치한 뒤 전시를 진행하고, 사진을 촬영으로 기록을 남겼다. 상자들은 화살표로 인해 자연스럽게 방향성을 띄었는데, 이로인해 상자를 배치할 때의 퍼포먼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쉬이 끌기도 했다. 또한 상자들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매번 다른 방향을 갖는 흐름을 만들었다. 주로 일상적인 공간(작은 마을, 공원, 학교 공터, 공항 등)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소한 광경에 의아해 하며 상자 주변에 모이거나, 멀리서 시선을 상자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또한 상자는 스스로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곳에 자연스럽게 앉기도 했으며, 늦은 밤 들렸던 브뤼셀의 한 바에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술잔을 올려 놓기도 했다. 이렇듯 정육면체의 상자들은 매번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특별한 순간들을 만들어 냈는데, 나는 이러한 상자들의 여행의 유일한 목격자로서 상자들과 함께 경험들은 나의 기억에 연속적으로 저장되었다. - 가령 바갈라디라(Bagaladi)라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상자를 목격한 사람들은 프랑스 낭트의 일드 베르샤유(Île de Versailles)의 목격자들과는 다르다.

한편, 나는 상자들과의 여정 동안 상자들이 놓였던 장소 및 시간에 대한 정보와 함께 당시 내가 가졌던 느낌과 생각을 짧은 메모로 기록하였는데, 이들을 당시 촬영했던 사진들과 함께 하나의 책으로 제작하였다. "Painted Boxes "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총 51 페이지의 투명 파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페이지는 투명한 배경에 텍스트가 적혀 있거나 불투명 배경에 이미지가 고정되 되어 보여지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독자가 여러 화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데, 이는 책이 가지는 선형적인 경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즉, 일반적인 책은 페이지를 순차적으로 넘겨가며 한 번에 한 면(두 페이지)의 화면만을 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는데 Painted Boxes 에서는 투명한 화면을 도입하여 겹쳐진 화면을 볼 수 있도록한 것이다. 또한 이는 독자가 텍스트가 겹쳐진 이미지를 본 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텍스트가 사라진 이미지만을 보거나, 반대로 이미지를 먼저 보고 페이지를 넘긴 뒤 텍스트가 겹쳐진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공한다. 여기서 의도적으로 이미지가 찍혔던 상황과는 전혀 상관 없이 기록한 텍스트를 해당 이미지와 겹쳐 배치를 하기도 했는데, 이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 대한 일종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경험에 대해 얘기를 할 때 종종 이야기의 앞뒤를 바꿔서 말하거나 중간에 전혀 상관 없는 내용들을 끼워 넣어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때로는 이러한 방법이 청자에게 보다 효과적인 이야기 전달 방법이 되기도 했다. 내가 경험하는 것들은 나를 중심으로 선형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행하는 유일한 행위자이자 목격자로서 그들 중 일부의 경험들이 생략되더라도 그 외의 경험들을 연속적으로 이해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가령 Painted Boxes의 상자들과 함께한 "나의" 경험은 "나에게" 유일하며, 이들과 함께 "내가" 만든 순간들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화면들로서 연속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Painted Boxes의 기록은Painted Boxes 에서는 불연속적인 경험들이 된다. Painted Boxes 의 독자들은 Painted Boxes 경험들의 불완전한 파편들을 목격할 것이며, 이러한 불완전성은 또 다른 상상력으로 채워지기도,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는 책의 일부 페이지를 빈 채로 두거나, 텍스트는 최대한 짧은 문장으로 기록였으며, 이미지들은 다양한 크기와 배치로 파편들의 나머지 부분들을 설명하기 보다는 새롭게 목격되는 화면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랬다.

Painted Boxes들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시선이 상자들에 머무는 한 상자들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Painted Boxes 은 또 다른 여정에서 무한한 목격자를 기다리며 영원히 아직 펼쳐지지 않은 채로 남을 수 있는 무한 선형의 세계로 존재할 것이다.

- 2020. 1. 10